▲ "충성" 이근호가 2014년 월드컵 득점 뒤 거수경례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기회가 주어진다면 군인이 전쟁에 나간다는 마음으로 하겠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 - 홍철(상주 상무)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으로 삼국 시대를 종결하고 통일을 이룬 신라의 화랑들이 마음에 품었던 '세속오계'의 하나다. 지금까지도 군인의 마음가짐을 설명하는 말이다. 비록 전쟁은 아니지만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出戰)'하는 한국 축구 대표 팀이다. 대회를 준비하는 26명 선수 가운데 진짜 군인들도 있다. 현재 26명 명단 가운데 3명이나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군인과 의무 경찰이다. 홍철, 김민우(이상 상주 상무) 그리고 주세종(아산 무궁화). 스웨덴, 멕시코 그리고 독일까지 만만한 상대가 없는 조에 속한 한국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한다.

역대 군인 정신으로 월드컵 무대를 누빈 '군인' 선수들의 활약상은 어땠을까. 25일 홍철은 "국군체육부대 선수로서 업적을 이루신 선배들의 계보가 이어지도록 (김)민우와 최선을 다해 국위선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홍철의 러시아 월드컵은 어떨까. ⓒ연합뉴스

◆ 1994년 미국 월드컵: 서정원, 스페인전 극적인 동점 골

현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은 군인 신분으로 월드컵에 나선 최초의 선수다. 그리고 활약도도 좋았다. 첫 경기부터 교체로 투입돼 득점을 터뜨렸다. 스페인과 조별 리그 1차전 0-2로 끌려가던 후반 14분 김주성과 교체돼 피치를 밟았다. 무더위 속에 쉽지 않은 경기였지만 한국의 대추격전이 시작됐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굴절되면서 한 골을 만회했고, 패색이 짙은 후반 45분 '날쌘돌이' 서정원이 스페인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골문 구석을 찌르는 슛으로 마무리를 한 뒤 서정원은 어퍼컷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했다.

서정원은 볼리비아전에서는 선발 출전, 독일전에도 교체 출전하면서 조별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1994년 월드컵은 비록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펼쳤던 대회로 기억된다.

▲ 서정원 현 수원 삼성 감독의 선수 시절. 스페인의 고개를 떨구게 한 극적인 동점 골.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성용, 최용수, 서동명

네덜란드 0-5 완패로 강렬한 기억을 남긴 대회다. 무려 3명의 군인 선수가 참가했다. '독수리' 스트라이커 최용수와 측면 수비수 최성용, 그리고 주전 골키퍼 김병지의 뒤를 지킨 서동명이 그 주인공. 

최용수는 아시아 지역 예선 당시 활약이 좋았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본을 상대로 7골 2도움을 올리면서 스트라이커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본선에서 활약은 예선에 미치지 못했다. 신체 능력이 좋고 타점 높은 헤딩이 장점이지만 조별 리그 2,3차전에서 유럽 팀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만나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최성용은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멕시코와 1차전에선 김도근 대신 교체로 출전했고, 나머지 2경기엔 모두 선발 출전했다가 교체 아웃됐다. 투지 있는 경기력이 장점이었지만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 벨기에와 '북중미 맹주' 멕시코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 2006년 독일 월드컵: 정경호

저돌적인 측면 돌파가 장점인 공격수 정경호도 2006년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천수와 박지성이 주전 붙박이 측면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출전 기회는 잡지 못했다.

▲ 2010년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직후 16강을 확정하고 난 뒤. 김정우의 환호.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김정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허정무호에서 김정우는 주전 미드필더로 피치를 누볐다. 역대 두 번째로 조별 리그를 통과한 데다가, 원정에서 처음으로 16강까지 오른 기쁨을 주역으로 함께했다. 눈에 띄는 기록은 없다. 김정우가 워낙 궂은 일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패스와 기술도 뛰어나지만 군인답게 헌신적으로 뛴 김정우는 한국의 중원에서 공격을 차단하고 다시 연결했다. 우루과이와 16강전까지 4경기에 모두 선발 풀타임 출장했다는 것은 김정우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 박지성,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함께 중원을 책임진 김정우는 밤톨머리 '언성 히어로(Unsung Hero)'라 불릴 만했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근호

당시 상주 소속의 이근호(강원FC)는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해, 빠른 발과 저돌적인 돌파로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임무를 맡았다. 러시아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후반 23분 상대로 과감한 중거리슛을 시도해 러시아의 골문을 열어 선제골을 만들었다. 득점 뒤엔 멋진 '경례'로 한국 군인의 위상을 드높였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공격수들이 즐비한 월드컵 무대에서 연봉이 겨우 100만원을 넘는 이근호는 '가격대 성능비' 최고의 공격수였다. 러시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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