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운동경기에서 역전승(逆轉勝)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누구는 역전의 짜릿한 기분을, 누구는 역전을 이루기 위해 쏟은 땀방울을, 누구는 역전을 가능하게 한 정신력을 얘기할 것이다.

한국은 2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8년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여자부 2주차 6조 1차전에서 독일에 세트스코어 3-1(23-25 26-24 25-16 25-16)로 역전승했다.

이 역전승으로 3승1패를 기록한 한국은 이날 현재 중간 순위에서 4연승으로 단독 선두에 나선 네덜란드에 이어 미국 세르비아 러시아 브라질 터키와 공동 2위에 올랐다. 중국 벨기에 폴란드가 2승2패로 공동 3위, 도미니카공화국 태국 독일 일본이 1승 3패로 공동 4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는 4연패로 공동 꼴찌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는 개최국 중국과 예선 성적 상위 5개 팀 등 6개 국이 다음 달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난징에서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겨루는 결승 라운드 진출이 사실상 좌절됐다.

글쓴이는 한국이 독일과 경기에서 펼치는 역전 과정을 보면서 여자 배구사에 길이 빛나고 있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을 떠올렸다.

42년 전 여자 배구가 올림픽 동메달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8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조별 리그 B조에 속한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 대회 준우승국인 옛 소련에 세트스코어 1-3(16-14 12-15 2-15 14-16)으로 졌다. 지긴 했지만 그 무렵 세계 여자 배구계를 양분하고 있던 소련과 경기에서 선전했다

동독, 쿠바와 치른 조별 리그 2, 3차전은 말 그대로 혈전이었다. 두 경기 모두 풀세트 접전이었다. 동독과 2차전은 1, 2세트를 5-15, 11-15로 내준 뒤 3개 세트를 16-14, 15-2, 15-13으로 이겼다. 이 경기를 놓쳤으면 신세대 팬들도 자랑스러하는 한국 여자 배구 올림픽 메달은 없었다.

세트스코어 0-2로 뒤진 가운데 3세트를 듀스 끝에 16-14로 잡고 이후 두 세트를 연속으로 따는 과정을 야구로 치면 9회 초까지 1-5로 뒤지다 9회 말 만루 홈런으로 5-5 동점을 만들고 연장 11회 말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승한 정도라고나 할까.

세트별 스코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는 랠리포인트제가 아니어서 서브권이 있을 때만 점수가 올라갔고 이를 바탕으로 끈질긴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런데 동독과는 2년 전인 1974년 멕시코 세계선수권대회 결승 리그에서 만나 세트스코어 3-1(15-13 15-7 11-15 15-9)로 이긴 적이 있었다. 이 경기 승리로 한국은 1967년 일본 대회(동)에 이어 세계선수권대회대회 사상 두 번째 메달(동)을 딸 수 있었고 동독은 4위로 밀렸다. 동독으로서는 한국이 참 얄미운 상대였을 듯하다.

대역전승으로 준결승행 혈로(血路)을 뚫긴 했지만 쿠바와 3차전도 만만치 않았다. 첫 세트를 듀스 끝에 14-16으로 내준 뒤 2, 3세트를 15-4 15-8로 이겼으나 4세트를 13-15로 내줘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마지막 세트에서 한국은 다시 한번 끈질긴 승부 정신을 발휘하며 15-10으로 이겨 4강에 올랐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에 세트스코어 3-1(3-1(12-15 15-12 15-10 15-6)로 또다시 역전승을 거뒀다.

조별 리그를 포함해 3차례 역전승이 한국 여자 배구에 준 큰 선물이 올림픽 동메달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국이 준결승에서 일본에 13-15 6-15 5-15로 진 데에는 다소 아쉬운 사연이 있다. 이 무렵 일본 대표 팀 주 공격수는 시라이 다카코(白井貴子 한국 이름 윤정순 尹貞順)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은메달 멤버이기도 한 시라이는 야구 선수 장훈과 프로 레슬러 역도산 등 재일 동포 우수 운동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다. 아쉬운 내용은 시라이가 요즘으로 치면 사실상 프로인 국내 실업 팀 입단을 알아봤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가 당시 일본 여자 배구의 강호 히다치에 입단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40여 전 일이고 이제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김연경 ‘원맨팀’에서 서서히 벗어나 올림픽 동메달 이상을 노려볼 만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VNL은 자카르타(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거쳐 도쿄(2020년 여름철 올림픽)로 가는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 김연경은 22일 독일과 경기에서 29점을 올리며 세트스코어 3-1 한국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대한배구협회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 준결승 일본과 경기에서 분전하는 한국 선수들. 조혜정 유경화 유정혜 윤영내 이순복 변경자 정순옥 마금자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백명선 등 이 대회 동메달의 주인공들 가운데에는 신세대 배구 팬들이 알 만한 이도 있다. ⓒ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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