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버닝' 스틸. 제공|CGV 아트하우스

[스포티비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버닝'의 주인공인 종수는 유통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이다. 서글프고 아픈 청춘이다. 소설을 쓰고 있지만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소개하지 못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처지는 찬란하게 빛나야 할 청춘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또 다른 주인공 해미는 빛난다. 나레이터 모델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꿈을 꾼다. 없다는 것을 잊음으로써 완성되는 판토마임을 배우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카드빚이 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드빚은 현실이고, 해미는 현실에 살지 않는다. 죽음은 무섭지만 연기처럼 사라지길 갈망한다.

어린시절 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느끼고 있는 종수와 해미가 만났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종수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보지 않는 해미에게 빠져든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해미를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가고, 그곳에서 벤을 마주한다. 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인물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부유하다. 종수의 말처럼 벤은 '위대한 개츠비'다.

해미가 종수에게 벤을 소개한 뒤부터 해미 옆에는 언제나 벤이 있다. 해미의 전화의 반가움을 느낀 종수는 벤의 얼굴을 보고 묘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지금 당장 시동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은 자신의 트럭과 굉음을 내고 달리는 벤의 포르쉐, 시골 낡은 자신의 집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벤의 럭셔리 하우스가 대조되며 상실감은 커지고, 해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높아진다.

그러 던 어느 날 종수는 노는 게 일인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듣는다. 그 비밀스러운 취미는 두 달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 "두 달에 한번이 적당하다"고 했고, 그 적당한 주기는 벤이 일상에서 따분함을 느끼는 기간과 비슷하다. 청춘의 무료함, 그리고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청춘의 분노와 불안의 주기인지도 모른다.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들은 종수 역시 상상을 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고 있는 벤이지만, 꿈에서 만큼은 자신도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즐겨볼 수 있다. 소설을 쓰지만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것인지, 아버지로부터 유전됐는지 모를 분노를 수 분만에 날려 버린다. 상상이 끝난 뒤 현실로 돌아온 종수는 더욱 불안함을 느낀다.

▲ 영화 '버닝' 스틸. 제공|CGV 아트하우스

종수 역을 맡은 유아인은 청춘의 불안함을 대변한다. 유아인이 지닌 특유의 이미지는 종수를 느끼고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 거친 숨소리 등 감정 이입에 좋은 요소로 작용한다.

해미 역을 맡은 전종서의 새로운 얼굴은 영화 속 빛을 만나 더욱 빛난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해미의 감성과 전종서의 표현력이 만나 해미를 영화 속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현실에 존재할 법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영화의 백미로 손꼽히는 조명과 빛, 전종서의 매력이 만나 노을 춤사위 신이라는 명장면을 만들어 낸다.

처음으로 100% 한국어 연기를 펼친 스티븐 연은 다소 어색하지만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 인물을 표현하기에 대중적 인지도나 스티븐 연의 연기력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하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진짜 근본을 찾기 힘든 청춘이 품고 있는 분노, 그 분노를 풀 수 있는 방법 등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작품성을 떠나 관객들의 호 불호가 나눠질 만 하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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