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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북한 스포츠 이야기(2)] 여자 단식 2연속 세계선수권자를 낳은 북한 탁구 저력

기사승인 2018.05.17 11:37

▲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게임 스코어 3-2로 물리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시상대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지난 7일 스웨덴 할므스타드에서 막을 내린 2018년 세계단체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은 여자 준준결승을 앞두고 단일팀(유일 팀) ‘코리아’를 꾸려 준준결승 남북 경기를 건너뛰고 준결승에 올랐다.

‘코리아’는 최근 몇 년 사이 1950~60년대 전성기를 되살리고 있는 일본에 게임 스코어 0-3으로 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스포츠 팬들이 잘 알고 있듯이 탁구는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두 번째 단일팀을 꾸렸다. 탁구 외에 남자 축구(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와 여자 아이스하키(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가 단일팀을 구성했다.

두 번째 탁구 단일팀 구성에 대해 ‘전격적’이란 표현을 썼지만 탁구 남북 교류사를 살펴보면 남북 관계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분단 이후 오랜 기간 한국과 북한은 여러 종목에서 날카롭게 맞서기도 했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따뜻하게 교류하고 있기도 했다. 특히 탁구는 남과 북의 경기력 차이가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종목 가운데 하나이고 세계선수권대회가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분리되기 전에는 2년마다, 분리된 이후에는 해마다 열리고 있어 좀 과장하면 남북 탁구 선수들은 잘 만나지 않는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난다. 우수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부터 만나게 되니 10년 이상 교류하는 예도 적지 않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는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픽에서, 1974년 테헤란 대회부터는 4년마다 한 번씩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회동한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2년마다 재회한다. 이밖에 연령대별 주니어 대회 등에서도 남과 북 탁구 선수와 경기인들은 수시로 만난다.

탁구는 남북이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세계 상위권 수준의 경기력을 반세기 가까이 유지하고 있어 거의 모든 대회에 함께 출전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종목보다 교류의 역사가 길다.

현역 시절 야구 기자였던 글쓴이는 짧은 기간 탁구 종목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사이 자오즈민-안재형 부부가 남몰래 사랑을 키워 가던 1987년 2월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종목별 남북 교류가 대규모로 이뤄진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남북 선수와 경기인이 오붓하게 친분을 나눈 아시아선수권대회(쿠알라룸푸르), 남북 스포츠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기자가 북한 선수도 많이 취재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등에서 이뤄진 남북 탁구 교류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여자 복식 현정화(오른쪽)-리분희 조. 현-리 조는 8강전에서 은메달 조인 덩야핑-치아오훙(중국)에게 세트스코어 2-3으로 져 메달 직전에서 물러났다. ⓒ대한체육회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탁구협회 관계자에게서 북한 탁구의 영웅 박영순이 세상을 일찍 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왼손 펜홀드 드라이브 전형에 스카이서브를 구사한 박영순은 1977년 버밍엄(영국), 1979년 평양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서 연속 우승했다. 탁구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한민족이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단식에서 두 차례 세계 정상에 오른 이는 박영순이 유일하다. 그때나 이제나 중국 탁구의 위세는 대단하다. 이질 라버의 갈신애(거신아이), 스카이서브의 장덕영(장더잉)이 세계 무대를 주름 잡던 시절에 이룬 뛰어난 성적이다.

박도천 전 국제탁구연맹(ITTF ) 이사는 "박영순은 왼손잡이 양영자(1981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은메달)라고 생각하면 경기 스타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름대로 '북한형 탁구'를 만들었고 최고의 작품이 박영순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영순의 뒤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남북 단일팀 ‘코리아’ 우승의 주역 리분희와 유순복이 이었지만 박영순만큼의 성적은 남기지 못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탁구가 1988년 서울 대회보다 앞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면 북한은 올림픽 탁구 통산 성적에서 더 높은 순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

2018년 현재 올림픽 탁구 통산 순위는 중국이 금메달 28개와 은메달 17개, 동메달 8개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금 3 은 3 동 12) 스웨덴(금 1 은 1 동 1) 독일(은 3 동 4) 일본(은 2 동 2)이 2~5위에 올라 있다. 북한은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로 6위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출전한 1983년 제37회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이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따는 데 한몫한 리분희가 20대 초반 숙녀가 됐을 때인 1990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세계적인 수비수 리근상에게서 리분희와 김성희가 가깝게 지낸다는 ‘특급 비밀’을 전해 들었다. 남북 단일팀 ‘코리아’ 결성됐을 때 남 측 유남규-현정화처럼 김성희-리분희는 예외적으로 남북 혼성이 아닌 북-북 조로 대회에 나서 혼합복식 동메달을 차지했다. 둘은 이후 결혼했다.

▲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여자 복식 유순복(앞)ㅡ홍차옥(뒤) 조. 유-홍 조는 8강전에서 중국의 리준-딩야핑 조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졌다. ⓒ대한체육회

리근상은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성품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북한 선수단 내부 사정까지 글쓴이에게 말하기도 했다. 리근상은 한국의 주세혁(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은메달)과 같은 수비 전문 선수인데 1980년대 후반에는 당시 세계적인 선수들인 얀 오베 발트너, 에릭 린트, 요르겐 페르손(이상 스웨덴), 장지아리앙, 마원거, 천룽찬(이상 중국) 등과 경쟁하며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남북은 탁구 종목에서 오랜 기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탁구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북한의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을 간추려 본다.

한국은 1959년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제25회 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32회 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 결과는 스포츠 팬들이 잘 알고 있다.

북한은 1965년 유고슬라비아 류블려나에서 열린 제28회 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 1967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29회 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남자부의 경우 한국보다 앞서 국제 무대에서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북한은 1979년 제35회 대회를 평양에서 개최했는데 여자 단체전 은메달과 여자 단식 은메달, 여자 복식 동메달로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북한은 여자 단체전에서 2연속 단식 세계선수권자인 박영순을 내세웠으나 그때 중국에는 갈신애 장덕영 조연화(차오옌후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남자부는 노메달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불참한 북한은 1980년대에도 1981년 제36회 유고슬라비아 노비사드 대회와 1985년 제38회 스웨덴 예테보리 대회 여자 단체전 은메달, 1987년 제39회 뉴델리 대회와 1989년 제40회 서독 도르트문트 대회 남자 단체전 동메달, 이 대회 여자 단식 리분희 은메달 등 수준급 성적을 꾸준히 올렸다.

1991년 남북 단일팀 직후인 1993년 제42회 예테보리 대회에서 여자 단체전 은메달과 혼합복식 동메달 등 1990년에도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하던 북한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서도 개인전과 단체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정 수준의 성적은 올리고 있다.

2013년 파리에서 열린 개인전 대회 혼합복식 결승에서 북한의 김혁봉-김정 조와 한국의 이상수-박영숙 조가 만나 김-김 조가 금메달, 이-박 조가 은메달을 차지한 게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올린, 기억할 만한 성적이다.

북한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여자 단식에서 김송이가 동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는 2004년 아테네 대회 김향미(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북한이 올림픽 탁구에서 획득한 메달이다. 한국은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북한 남자 탁구는 한때 중국 스웨덴과 세계 3강을 이뤘고 북한 여자 탁구는 1990년대까지 한국과 함께 중국과 겨루는 ‘유이’한 대항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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