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7년 만에 ACL 8강에 진출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수원, 조형애 기자] 어~ 어? 어!

고백하건데 경기 내용이고 스코어고 맞춘 게 단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선발 라인업을 보고 '어~'. '결정이 나도 후반에 나겠구나' 생각했다. 킥오프 뒤부터는 '어?'. 놀람을 넘어 당황의 연속이었다. 실점을 두려워 하는 팀이 아니었다. 수원삼성은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을 보여주는 것 처럼 보였다. 더구나 재미도 있었다. 그리곤 '어!'. 김건희-조원희 이름 참 비슷한 두 선수 활약에 입이 떡벌어졌다.

우산을 쓰자니 호들갑을 떠는 것 같고 안쓰자니 온몸이 축축해지는 것 같은 그런 날이있다. 괜히 집에 콕 박혀있고 싶은 날. '축구 공짜로 봐서 좋겠다'는 말을 정기적으로 듣는 직장인은 그렇게 16일 궂은 날씨 속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수원삼성과 울산현대 경기가 열리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일하러.

고지대(?)에 위치한 미디어석에 착석. 친절한 관계자에게 라인업이 프린트 된 종이를 받는 것으로 업무는 시작됐다. 수원은 예상대로 3-4-3을 썼다. 염기훈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에 김건희가 들어와 데얀 바그닝요와 함께 스리톱을 구성했고 이기제와 장호익이 양측 윙백으로 나섰다. 미드필드는 김은선과 조원희의 조합. 스리백은 매튜 곽광선 구자룡이 서고 골키퍼 장갑은 신화용이 끼는 게 선발 구성이었다.

▲ 멀리 조원희가 보인다. 그는 '언성 히어로'였다. ⓒ연합뉴스

눈에 띈 건 김건희와 조원희였다. 지난 1차전과 달리 선발로 나선 두 사람은 어쩐지 이날 경기 열쇠를 쥔 인물로 보였다.

현재는 과거와 연결돼 있고, 과거는 현재의 전제가 된다. 그러니 기대가 컷다면 거짓말이다. 김건희는 염기훈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카드, 조원희는 보다 수비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서정원 감독도 "멤버로 볼 때는 수비적으로 볼 수는 있다"고 인정한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김건희는 전반 2골을 몰아 넣으면서 킥오프전 한 동료와 '김건희가 군대 가기 전 골 넣는거 아니야?'라는 대화에 '설마'라 했던 걸 민망케했다. 조원희는 '언성 히어로'였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중원이 두터운 팀들은 수원과 만남에 자신을 보여 왔었다. '미드필드에서는 앞설 것 같고 측면을 잘 막으면 승산이 있다'는 게 상대팀의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날은 국가대표 박주호가 버티고 있는 울산도 수원을 막아서지 못했다.

승부는 싱거웠다. 1차전에서 0-1로 지면서 8강 진출 경우의 수가 '2골 차 이상 승리' 밖에 없었던 수원은 경기 막판 3-0까지 달아나면서 합산 3-1로 다음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2011년 이후 7년 만에 ACL 무대 8강행이다.

▲ 입대 전 마지막 홈 경기, '나를 잊지 말아요' ⓒ연합뉴스

◆ "건희가 걱정": 아픈 손가락, 김건희의 입대 전 무력 시위

김건희의 활약은 반전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수원 유스 매탄고 출신, 대학에서도 이름 좀 날렸던 김건희는 수원의 '아픈 손가락'이 된지 사실 꽤 됐다. 시즌을 앞둔 동계 훈련에서 수원 관계자는 "건희가 걱정이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당시 U-23 대표팀에 차출 돼 이렇다할 활약도 하고 오지 못한 데다 동계 훈련도 100%하지 못해 걱정은 더욱 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건희 활약은 수원을 활짝 웃게 했다. 더구나 군 입대를 결정한 그가 마지막으로 치르는 홈 경기에서, 팀을 8강행에 이끌었으니 기특해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서정원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당히 힘들어 했던 선수다. 경기 많이 나가지 못했고, 23세 대표팀 가서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곳에서도 잘 안됐다. 여기서도 안되고 저기도 안되니,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본인도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아픔을 이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근래 컨디션이 좋았다. 한 단계 올라서면 23세 대표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김건희는 1,2년차 자신을 짓눌렀던 '수원'이라는 무게를 이제 서서히 이겨내는 중이다. 여전히 부족하다고는 했다. 하지만 "좋은 경기력 보여주지 못해 감독님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고 모든 게 죄송할 정도였다"는 진솔한 고백, 그 아래 깔려있는 인정은 어느덧 그가 극복 과정을 꽤 통과했다는 걸 느끼게 했다.

▲ 가장 이름이 많이 연호된 선수, 외치는 함성이 가장 컸던 선수. 조원희였다. ⓒ연합뉴스

◆ "어떻게 안뛰게 할 수 있겠나": '준비왕' 조원희, 믿음에 화답하다

김건희 만큼, 혹은 더 활약이 놀라웠던 선수는 단연 조원희였다. 감히 '회춘'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성기를 소환한 듯한 경기력을 보였다. 서정원 감독이 코칭스태프와 고심 끝에 작성했다는 선발 라인업. 그가 한 자리를 꿰찬 건 준비하는 자세 덕이었다.

"조원희 선수는, 정말 우리 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보면 본받을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정말 준비를 많이 하는 선수다. 예를 들면 지난 대구 경기 끝났을 때다. 늦은 저녁에 식사 끝나고 다 집에 가는데 혼자 탕에 들어간 게 조원희였다. 냉탕, 온탕 들어가면서 몸을 관리했다. 코칭스태프들로서는 그런 선수를 안뛰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조원희의 준비는 혼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선수단 '정신 교육(?)'까지 단단히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전 '수원의 DNA을 기억하라'면서 간절함을 선수들에게 심어 줬다고 김건희가 귀띔했다.

조원희는 "지난해 많이 출전 기회가 적었다 보니까 남달리 준비했다. 훈련할 때부터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들,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많이 준비한게 도움이 된 것 같다"면서 "뭘 한 건 없고 선참으로서 책임감이 막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경기장이나 외적 선수단 생활이나 모범되기위해 했던 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활약은 활약. 조원희는 연신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축구를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망언아닌 망언을 남긴 그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다. 염기훈은 기본적으로 축구를 잘하고 축구적인 부분 우리 팀의 정신적 지주다. 난 내가 할 일이 있다고 본다. 궂은 일을 하고 절박한 것을 강조하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면 수원 엠블럼을 퍽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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