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용인, 취재 정형근, 영상 장아라, 정찬 기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실한 대화가 오갔다. 평생 우승을 꿈꾼 67살 감독과 11년 만에 가슴에 별을 새긴 팀의 에이스는 한목소리로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창단 첫 우승은 사실 ‘예상 밖’ 일이었다.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대한항공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삼성화재에 졌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패배 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확률은 약 8%에 불과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나며 챔프전에 오른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에 1차전을 내줬다. 챔프 1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은 76.9%. 대한항공은 확률을 무시했다. 9세트를 내리 따내며 감격적인 첫 우승을 달성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6일 경기도 용인시 대한항공연수원에서 박기원 감독, 한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왼쪽)과 한선수. ⓒ용인, 한희재 기자

◆‘첫 우승’ 박기원 감독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우승하니 준우승보다 배는 바쁘다. 그동안 인터뷰와 파티, 축하 행사 등에 다녔다. 축하도 많이 받고 인터뷰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큰일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승의 원동력을 찾는다면 서로가 믿음이 더 생겼고, 긍정적인 쪽으로 팀이 움직인 것 같다.”

박기원 감독은 2000년대에 이탈리아 폴리에 구단과 이란 국가 대표 감독으로 활약했다. 이란 배구를 아시아 정상급으로 올려놓은 그는 2007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지휘봉을 잡았다. 2011년부터는 남자 배구 국가 대표 감독을 맡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항공은 2016년 박기원 감독을 선임했다. 그는 2016~17 시즌 팀을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1년 뒤 그는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뤄 냈다.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사이 배구판은 젊은 감독들이 대세로 떠올랐다. 

“젊은 감독들보다 강점이라면 경험이다. 되도록 선수들과 소통하며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게 차이점이다. 2년 동안 있으면서 선수들에게 너희들을 믿어도 되겠다고 얘기했다. 이제 우승했으니까 더 믿어도 되겠다.”

극적인 시즌을 보낸 대한항공은 시상식에서는 웃지 못했다. MVP와 베스트7, 신인선수상 주인공 가운데 대한항공 소속은 없었다. 박기원 감독이 유일하게 감독상을 받았다. 

“대한항공 감독이니까 대한항공 선수들이 많이 받았으면 했다. 내 눈에는 대한항공 선수들이 더 예뻐 보인다. 대한항공 감독으로서는 아쉽다. 하지만 KOVO에 있는 대한항공 팀이라고 하면 수긍을 해야 한다.”

대한항공 우승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지난 시즌 이후 구단은 웨이트트레이닝장과 고속 카메라, 의료 장비 등을 지원하며 선수들 훈련을 도왔다. 

“지난해 챔프전 끝나고 구단에서 먼저 필요한 것을 물어봤다. 초스피드로 준비해 주셨다. 오늘(6일) 아침에 구단에서 다시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1년 동안 선수단을 운용하며 부족한 점에 대해 코치들과 상의할 생각이다. 기술적으로 체육관에서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를 만들어 올릴 생각이다.”
▲ 'FA' 자격을 얻은 한선수는 "원 소속 팀에 남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용인, 한희재 기자

◆한선수 “FA요? 대한항공에 남는 게 가장 좋죠”

2007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한선수는 11년 만에 챔피언에 올랐다. 한선수는 동료 곽승석을 껴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도 안았다.

“1차전을 졌지만 2차전부터 신나게 경기를 한 것 같다. 아직까지 우승이 믿기지 않는다. 쉴 시간이 없다. 인터뷰만 10번 넘게 했다.”

33살 한선수는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게 목표이다. 

“40살까지 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마음이 약해지면 안된다. 한창이라고 생각하고 뛰려고 하고 있다. 롤 모델로 한 게 최태웅 감독님이다. 선수 시절부터 항상 봐 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박기원 감독은 한선수 칭찬에 나섰다. 그는 “한선수는 40살까지 충분히 뛰고도 남을 선수이다. 그 정도로 목표를 잡은 건 겸손하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톱 경기력에서 몇 년은 더 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다. 

한선수는 2015~16시즌 이후 3년 연속 연봉왕(5억 원)이었다. 한선수는 다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FA에 대한 생각은 아직 해 보지 않았다. 원 소속 팀에 남는 게 가자 좋다. 계속 뛰던 팀이다. 우승도 했다. 물론 대우를 좋게 받으면 좋다. 계획을 잘해 봐야 한다.”

한선수의 시선은 이미 다음 시즌을 향하고 있다.

“다음 시즌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챔프전을 하면서 팀이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이 10년 넘게 우승을 기다렸다. 소원을 하나라도 들어 드린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든다.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멋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불화설은 사실무근”…박기원 감독-한선수, 진심을 나누다 

박기원 감독과 한선수에게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선수는 지금 현재로는 한국 최고의 세터이다. 아시아에서도 톱이다. 이런 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데 많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나와 대표 팀에서도 같이했다. 나와 호흡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한선수는 박 감독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호통’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호흡이 잘 맞는다(웃음) 감독님이 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셨다. 대표 팀에서 4년, 지금 2년으로 6년을 같이했다. 감독님은 호통 리더십이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와 교체로 같이하는 선수들을 맞춰 가려고 하신다, 그래서 세터들이 많이 혼난다. 화를 좀 덜 내셨으면 좋겠다. 호통을 좀 줄이시고 더 밝고 차분하신 감독님이 됐으면 좋겠다.”

박 감독은 시즌 중반에 나온 한선수와 불화설을 일축했다.

“소문이나 댓글은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많다. 남 이야기를 자기 편한 대로 하면 안 된다. 선수단 안에서는 큰 상처를 받는다. 한선수는 그걸 반박하는 선수도,  포장하는 선수도 아니라 혼자서 삼키는 선수이다. 매우 힘들어 했다. 열정과 끈기로 참아 냈다. 올해 결과를 잘 내기까지 한선수에게 많은 끈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우승 DNA가 생긴 박기원 감독과 한선수는 ‘통합 우승’을 바라보고 있다. 

박 감독은 “첫 챔프전 우승을 했으니 통합 우승, 별 2개, 3개 달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선수는 “은퇴 전에 통합 우승을 하는 게 목표이다. 이건 (곽)승석이나 (정)지석이에게 물어봐야 한다”며 웃었다. 진심을 주고받은 두 남자는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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