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 골' 맹활약한 이동국 ⓒ전북 현대

[스포티비뉴스=전주, 유현태 기자] '불혹(不惑).' 동양의 고전 논어에 나오는 말로 나이 40세를 이른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사실 이동국은 지난 1월 전지훈련에서 만나 올 시즌 각오를 묻자 "부상이 없어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이가 드는 선수들은 부상이 오면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상하면 나이를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 노장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동국은 이번 시즌에도 나이 때문에 우려의 말을 건내는 주변에 '불혹'하며 자신의 길은 간다.여전히 그는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다는 전북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전북 현대는 13일 '전주성'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E조 1차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에 3-2로 역전승했다. 이동국이 2골을 터뜨리면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고, 김진수가 멋진 발리슛으로 힘을 보탰다. 시즌 첫 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가시와를 상대로 1무 5패 끝에 거둔 첫 승리. 전북이 '가시와 징크스'를 털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동국은 이용과 함께 하프타임 직후 경기장에 들어섰다. 예상보다 빠른 교체. 0-2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 더구나 가시와는 역습에 강점을 가진 팀. 최강희 감독의 선택은 이동국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4-1-4-1 포메이션을 4-4-2로 바꿨다. 이동국은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을 대신해 피치를 밟았다.

▲ 지난 1월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근육 운동을 하는 이동국. 여전히 탄탄한 근육질 몸매.

"수비에 밀려서 은퇴하면 오케이. 잘하고 있는데 후배를 위해 은퇴한다는 것은 자신이 없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생각을 미리 가지면 경기장에 나가려는 절실한 마음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간절하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이동국, 지난 1월 전지훈련서

경기장 분위기는 이동국 투입과 함께 변했다. 신체능력이 떨어지고 전성기가 지난 '노회한 스트라이커'가 들어온 것이 아니다. 세월은 경험을 선사했지만, 자기관리가 철저한 이동국은 여전히 탄탄한 몸매와 운동 능력은 지켜냈다. 이동국은 전방에서 가시와 선수들과 몸을 사리지 않고 몸싸움을 벌였다. 그의 가세로 전북은 전방으로 단순하게 공을 연결하면서도 다툴 힘을 얻었다. 김신욱 한 명은 어떻게든 막아내던 가시와 수비진은 이동국까지 등장하자 쩔쩔맸다. 어느새 공은 계속 가시와 진영에서 돌았다. 명백한 추격의 흐름.

후반 10분 만에 이동국이 '번쩍' 나타났다. 이재성의 코너킥을 껑충 뛰어올라 골망을 흔들었다. 전북은 득점으로 진짜 추격 흐름에 불을 붙였다. 후반 16분 김신욱이 멋진 발리슛으로 노크를 했다. 골대를 빗겨나갔지만 '이거 될 것 같은데'라는 분위기가 흘렀다.

가시와의 역습에 흔들리던 전북은 두 번째 골을 얻었다. 이동국이 후반 28분 수비수와 공을 다투다가 팔꿈치에 맞아 넘어지면서 얻은 프리킥이 시작이었다. 티아고가 직접 프리킥을 시도했지만 벽에 굴절됐다. 김신욱을 거쳐 김진수 앞에 공이 떨어지자, 김진수는 멋진 발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전반과 180도 바뀐 흐름. 전북은 내친 김에 역전을 노렸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는 한 골이 금방 터질 수도 있었다. 후반 38분 티아고의 날카로운 프리킥에 반응해 발을 쭉 뻗었지만 공은 살짝 골포스트를 지나갔다. 아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찬스는 금세 찾아왔다. 이동국은 3번째 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경기 뒤 "가시와 수비진들이 밀고나오는 게 인상적이엇다. 그런 부분에서 수비 뒤를 파고들면 찬스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후반 39분 홍정호가 크게 걷어낸 공에 가시와 수비진과 전북 공격진이 교차했다. 뒤에서 침투한 이동국이 공을 따냈다. 오른발로 공을 툭 밀어놓고 골대 구석을 꿰뚫는 감아차기 역전 골이 터졌다.

▲ 경기 뒤 따로 팬들과 인사를 나누는 'MOM' 이동국.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뛰는 것이 즐겁습니다. 나이를 콕 집을 때만 실감해요. 동료들과 즐기면서 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로서 경기를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동국, 경기 뒤 기자회견

좋은 선수, 그리고 베테랑의 가치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나는 법이다. 이동국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 개인 훈련을 하다가 종아리를 다쳤다. 오히려 한국에 돌아온 뒤 더 공을 들여 몸을 더 만들었고, 강도 높기로 소문난 전북의 자체 연습 게임으로 감각을 올렸다. 그리고 '숙적' 가시와전에서 역대 첫 번째 승리를 안기는 멀티 골로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나이'는 이동국의 경기력을 평가할 때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선수다. 전북에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된다. (이)동국이 형과 함께 해 영광이다." -미드필더 이재성

이동국은 팬들에게도 여전히 최고의 스타다. 선수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인터뷰 때문에 조금 늦게 이동국이 피치로 다시 들어서자 전북 서포터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동국 한 명과 팬들의 특별한 '오오렐레'가 다시 전주성을 울렸다. 이동국은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전북에서 여전히 공격수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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