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계에서는 보기 힘든 ‘청출어람’ 사례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이종범(오른쪽)-이정후 부자.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4년 봄 어느 날, 서울시야구협회에 작은 직책을 갖고 있던 글쓴이는 협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구의 야구 공원에 갔다. 구의 야구 공원은 열혈 팬이 아니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대체 구장이다. 서울시 초·중·고등학교 야구 꿈나무들이 시즌 내내 사용하는 구장이다. 일반 관객은 없고 선수 부모들만 조그만 관중석을 채우는 곳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구장 입구에서 오랜만에 이종범 전 한화 이글스 코치를 만났다. “이 감독(은퇴한 선수들에게 글쓴이가 붙이는 직함), 여기 어떻게 왔나.” “아들이 오늘 경기가 있어서요.” “아, 오늘 휘문고 경기가 있지.”

“그런데 이 감독, 아들내미가 아버지보다 야구를 훨씬 더 잘할 것 같아. 다리가 긴 걸 보니 키도 아버지보다 더 클 것 같고. 그리고 우투 좌타잖아. 야구 하는 데 좋은 조건 아닌가?”

자식 칭찬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종범 코치 입이 귀에 걸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묻고 또 물었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던 이종범 코치가 옆에 있던 아내를 소개했다. “내가 까까머리 때부터 취재하던 분이야.” 글쓴이는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1989년 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에서 봄철대학야구연맹전이 열리고 있었다. 광주일고를 갓 졸업한, 여전히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는 건국대 새내기 이종범이 고려대 4학년 기둥 투수 박동희(작고)를 상대로 1경기 2홈런을 때렸다.

프로 야구가 출범한 지 7년째, 한산하기만 한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스탠드가 술렁였다. “저 선수 누구야.”  일반 팬들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에서 나오는 이종범의 야무진 스윙은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글쓴이가 해태 타이거즈 경기를 취재하러 광주에 가면 그때 무등 구장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던 이종범 누나가 꼭 하던 말이 있다. “우리 종범이 기사 잘 써 주세요.”

이후 글쓴이가 신경 써서 이종범 기사를 잘 써 줄 일은 아예 없었다. 모든 야구 팬들이 알고 있듯이 이종범은 국내 최고의 야구 선수로 성장하게 되니까.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이종범 아들이 야구를 하는데, 꽤 잘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무심코 들었다. 야구인 2세들이 야구를 하는 사례는 예전부터 있었고 대체로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이유로 글쓴이는 2013년 구의 야구 공원에서 이종범 아들 경기를 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휘문중학교 3학년 때다. 그때 첫인상은 “스윙을 참 예쁘게 한다”였다. 아버지와는 좀 달랐다. 우투 좌타인데 밀어 쳐서 3~유간을 빠지는 안타를 치고 1루로 달려가는 장면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해 이정후는 중학교 리그 성적이긴 하지만 타율 6할을 기록했다.

그리고 1년 뒤 이정후의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몇몇 야구인이 글쓴이에게 귀띔했다. “(이)정후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유격수 자리를 형들에게 내주고 외야로 나갈 겁니다. 형들 프로 진출 문제가 있거든요.”

이정후는 야구 명문 휘문고 1학년 때부터 쟁쟁한 형들과 함께 주전으로 뛰었는데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바람의 손자’는 ‘바람의 아들’이 이루지 못한 프로 리그 신인왕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다시 또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려고 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과 메달 획득이다.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은 아버지가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이뤘기 때문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따야 하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은 아버지가 2006년 대회에서 달성했으니 2021년 대회에서 도전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외 리그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청출어람(靑出於藍), 야구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을 이정후가 이뤄 가고 있다. 아버지의 입이 다시 한번 귀에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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