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존슨 에버턴 장애인 축구 총 감독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한준 기자] 일주일 사이에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인물이 한국을 찾았다. 기업 행사로 네 번째로 한국에 방문한 데이비드 베컴은 짧은 시간 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베컴과 같은 해(2008년) 영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티브 존슨(53) 에버턴 장애축구팀 총감독의 경우 그 보다 조용하지만, 더 큰 의미를 갖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 

절단장애인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세 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선수였던 존슨은 장애인 축구 교육과 지원 시스템 구축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1일 입국해 26일까지 체류하는 에버턴 장애축구팀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23일 저녁 8시 30분, 인천 숭의아레나(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삼성의 KEB하나은행 K리그클래식 2017 31라운드 경기 종료 직후 개최, SPOTV 플러스 생중계)에서 한국의 발달장애 축구팀 해치서울FC와 합동으로 치를 ‘슈퍼블루’ 친선전이다. 

*슈퍼블루 캠페인: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의 상징물인 슈퍼블루 컬러의 신발끈을 매고 걸으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자는 취지.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을 수있도록 배려하며 궁극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국민 캠페인이다. 

경기를 하루 앞둔 22일, 에버턴과 스페셜올림픽코리아(스포츠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자존심 및 사회 적응력 향상을 도모하는 스페셜올림픽국제본부의 한국지부)가 구성한 발달 장애 축구팀의 합동 훈련을 지휘하고, 장애인 축구 훈련법 세미나를 진행한 존슨 감독을 만났다.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축구의 힘, 공을 차고, 그라운드를 내달리고 싶은 열정과 열망이 더 큰 ‘장애인 축구’의 현 주소를 물었다. 존슨 총감독은 영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분과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인사하자 굵은 저음으로 “나에 대해 많이 조사했군요”라고 웃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32년 전(1985년)에 장애인이 됐습니다. 유명한 팀은 아니었지만, 나도 지역의 어느 정도 수준있는 팀의 축구 선수였어요. 축구를 하던 중이었는데, 비가 와서 미끄러지면서 유리문과 충돌하면서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어요. 그때 난 21살이었죠. 다리를 잃었지만 축구를 하고 싶었고, 장애인들이 축구를 하지 못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어요.” 

다리를 잃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존슨의 열정은 그 이후 축구종가 영국의 장애인 스포츠, 특히장애인 축구 발전에 긍정의 나비효과가 되었다. 

“나와 같은 절단 장애뿐 아니라, 시각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축구를 하고, 축구를 배울 기회가 제한적이었죠. 난 대학에 가서 스포츠 과학 학위를 취득했고, 공부를 마치고 나서 영국장애인스포츠협회에서 일하면서 축구 발전 업무를 맡았어요. 이후 리버풀, 에버턴 같은 프로 축구팀의 장애인 축구 프로젝트를 함께 했습니다. 아주 성공적인 프로젝트였고, 이제는 50개 이상의 프로 팀이 참여하고 있어요. 거의 모든 프로 축구 클럽이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한 ‘지역 사회 공헌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 잉글랜드 절단 축구 대표로 3회 월드컵 우승을 이룬 존슨 ⓒ한준 기자


'로열 블루'로 대표되는 '푸른 군단' 에버턴은,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진행 중인 ‘슈퍼블루’ 캠페인과 궁합이 잘 맞은 케이스다. 에버턴은 프리미어리그 클럽 중에서도 지역 사회 공헌 사업, 특히 장애인 축구 관련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취를 낸 팀이다. 당장 존슨 자체가 잉글랜드 장애인 축구의 살아 이는 전설이다. 에버턴은 장애인 축구 발전을 위해 내한한 첫 ‘유명 클럽’이다.

“우리는 축구가 갖는 경쟁의 가치 보다, 플레이를 즐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경쟁적이고,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짙은 프리미어리그가 많은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이런 발전 사업의 기금이 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장애 축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죠. 에버턴의 경우 머지사이드 지역 사업에 아주 집중하고 있는 팀입니다. 무려 14~15개의 프로젝트가 지역 사회에 관한 것으로, 매일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팀입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나 리버풀 같은 팀은 세계 시장에서 팬층을 늘리는 데 더 집중하고 있죠. 지역 보다 해외에 신경을 쓰는데, 무엇이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관심의 방향이 다른 것이죠. 해외 시장을 겨냥하는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지역에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더 유명한 선수를 데려와 성적을 내고 있죠. 에버턴은 지역 사람들을 더 신경 씁니다. 우리 지역의 가족들을 돕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존슨은 단지 장애인 축구의 전문가가 아니라, 축구 전문가다. 앞서 얘기했듯 본인이 축구 선수 출신이었고, 스포츠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이자 UEFA 코칭 라이선스를 취득한 프로 지도자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직접 장애를 안고 축구를 해본 경험을 통해 장애인 축구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에버턴에서 장애인 축구 총감독을 맡으면서,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든 축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우선 장애인 축구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 장애에 따라 선수들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절단 장애인의 경우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7인제 축구를 해야 하고, 시각 장애인은 그에 맞는 별도의 설비가 필요하죠. 다운증후군, 지적 장애, 발달 장애인은 11인제 축구도 하고 있고요.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장애인 축구는 그동안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제 어떤 장애를 가진 이들이라도, 매주 축구 훈련을 할 수 있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경쟁적인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대회를 치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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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개인이 다르다”고 말한 존슨은, 그동안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과정에 가장 소외되었던 부분이 ‘체육 활동’이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장애인들이 대부분 체육 활동에서 빠져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체육 교사들이 장애들을 가르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우리는 장애인들의 체육 활동을 지원하고, 더불어 장애인 체육 지도법도 개발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존슨과 에버턴, 그리고 프리미어리그가 하는 일은 단순히 장애인들에게 축구라는 여가 활동의 기회 하나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다. 존슨도 그 점을 더 강조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에버턴을 초청해 한국 장애인 축구 발전의 디딤돌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도 더 큰 방향성을 갖고 있다. 

“이 일은 단지 축구라는 스포츠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사회 시스템에 들어오고, 사회 중심으로 들어오기 위한 기회를 주는 일, 그것을 돕기 위한 일입니다. 축구와 만나며 조금씩 조금씩 사회와 접점을 넓히는 것이죠. 처음에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들이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도록 돕고, 사회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 스티브 존슨 ⓒ한준 기자


“당장 우리 팀에 장애인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코치로도 일하고 있어요. 이번에 한국에 온 에버턴 코칭 스태프 중에 존과 윌의 경우 처음엔 장애인 선수로 시작했고, 지금은 에버턴의 장애인 프로젝트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존의 경우 특수학교에서 처음 만난 친구인데, 인턴십을 거쳐 지금은 풀타임 멤버로 에버턴에 취직했습니다. 그 학교의 대표적인 ‘롤 모델’이 됐고, 우리 프로젝트에도 상징적인 인물이라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모든 장애인,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축구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귀감을 만든 것이죠. 우리는 모든 장애인들이 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축구 이상의 일이에요.” 

존슨과 에버턴 장애축구팀이 축구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스포츠가 갖는 경쟁의 이미 보다 공유외 협동, 공동체 정신의 함양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 경기에서 감독과 지도자들에게 흔히 중시되는 선수들을 ‘동기 부여 시키는 일’에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선수들을 ‘모티베이션(Motivation)’할 필요가 많지는 않아요. 이들 중 대부분은 축구를 하는 게 처음이에요. 앞서 이건 단지 축구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했는데, 이들에겐 축구가 사회 참여를 위한 아주 큰 기반입니다. 그래서 훈련이나 경기 중에 따로 동기부여를 시킬 필요가 없어요. 이런 기회가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해 하고 있으니까요. 그전엔 이들에겐 아무런 기회가 없었어요.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축구 게임만 할 수 있던 이들에게, 직접 공을 차고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보통 장애인들은 부자인 경우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사회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자체가 강력한 동기부여입니다.” 

“이들에겐 삶의 모든 것이 일반적이지 않아요. 장애인들이 더 많이 밖으로 나가서 포용하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 축구라고 해서, 경쟁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를 하는 이상,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각각 절단, 다운증후군, 시각 장애인, 발달 장애인 등 여러 장애에 따른 팀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해당 장애 유형 안에서도 경기력 수준에 따라 다른 교육과 운영법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선수들도 경쟁하며 이기고 싶어해요. 프로 선수들처럼 영웅이 되고 싶어하죠. 프로 축구는 아니지만, 경쟁하도록 가능한 높은 수준을 보이기 위해 밀어 붙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 실제로 프로 선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 프로그램을 거친 15명의 선수가 유럽 대회나 세계 대회 등 장애인 국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더 높은 레벨의 선수가 되도록 하는 것도 우리 목표 중 하나입니다.”

▲ 장애인 축구 훈련법 세미나 중인 존슨 에버턴 총감독 ⓒ한준 기자


영국에서도 장애인 축구 경기에 관중이 들어차지는 않는다. 중요도가 높은 경기는 영국 방송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하이라이트가 방송되고, 어느 정도 관객이 온다. 더불어 1군 선수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있어 지역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셰이머스 콜먼이 에버턴 장애인 팀의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 경기는 아니지만 자주 오고, 다른 1군 선수들이 모면 팬들도 더 찾아와요. 에버턴 프로 선수들, 특히 콜먼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존슨 자체가 축구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경력을 만든 가장 큰 중요한 귀감이다. 

“난 운이 좋았어요. 사고를 당했을 때,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오른발 잡이 선수였거든요. 왼발은 그냥 거들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운이 좋았죠. (웃음) 마침 사고가 난 이후 미국의 절단 장애 축구팀의 초청을 받았어요. 1987년이었는데, 내가 잉글랜드에서도 절단 장애 축구를 처음 시작한 멤버였습니다. 이듬해(1988년) 월드컵에 나갔죠. 훈련도 엄청 열심히 했고,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돈도 열심히 벌었죠. 처음 나간 대회에서 결승전에 올랐어요. 무실점으로 한 경기도 지지 않았습니다. 엘살바도르와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이미 꽤 많은 선수층을 갖춘 절단 장애 축구 분야의 강호였어요. 젊은 선수들도 많았고, 우리는 딱 11명만 꾸려서 갔죠. 결승전 전반전에 0-3으로 지고 있었는데, 3-3까지 따라가서 연장전에 4-3으로 이기고 우승했습니다. 환상적이었죠. 두 번 더 우승했는데, 브라질과 결승전에서 제가 결승골을 넣었던 때도 있었어요. 주장을 맡기도 했죠. 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다리를 잃었지만 세계를 다니며 축구를 했고, 두 번의 패럴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에 배구 선수로도 출전했어요. 다리를 잃었지만 축구를 하고, 스포츠를 하며 나라를 대표했고, 지금은 에버턴 같은 빅클럽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존슨은 자신이 가진 행운을 다른 많은 장애인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에 온 목적도, 한국의 장애인 축구와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에버턴 장애축구팀은 스페셜올림픽코리아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지만, 체재비 외에 항공 여정 등 경비를 자체 자금으로 조달할 정도의 열성을 보였다. 추후 정기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도 보였다. 단지 해외 시장의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프리미어리그의 마케팅 활동이 아닌, 그들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선수들과 이번에 같이 운동을 해보니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물론,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인상을 받았고, 함께 치를 경기도 기대가 큽니다. 이렇게 장애인 축구가 한국에서도 언론에 소개되고, TV로 중계되는 것이 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장애축구의 유산과 가치를 전수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며 한국의 장애인 축구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잉글랜드의 경우 50개 카운티에 1명씩 장애인축구 담당자를 두고 있고, 에버턴도 장애인 축구 사무소를 두고 있어요. 협회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죠. 우리의 노력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협회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협회와 연맹, K리그 팀들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각 지역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참가하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고, 장애인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인터뷰=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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