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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포항, 조형애 기자] 머리카락을 내어주고 욕심을 다시 장착했다. "제가 해결할게요. 골도 넣고, 이길게요." 대뜸 뱉어버렸다는 말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스플릿 A탈락이 조기 확정될 수도 있었던 상황. 벼랑 끝에서 포항 스틸러스는 구사일생했고, 그 중심에는 스스로를 '강철전사'라고 부르는 심동운(27)이 있었다.

◆ 심동운의 결정적 한방 : 까까머리로 1골 1도움 '강원전 MOM'

포항은 20일 스플릿 A그룹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올 시즌 한 번도 못이긴 6위 강원을 무려 5-2로 대파하고 승점 차이를 4점으로 좁혔다. 심동운을 본 건 이튿날. 오전 훈련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나온 그를 포항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이는 것부터 물었다. 포항 관계자부터 최순호 감독까지 한 마디씩 거들었던 그의 '까까머리'다. "머리는 경기 전날(19일) 잘랐어요. 자르려고 마음 먹은 건 일주일 정도 됐어요. 경기장 보여주려고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있다가 갔죠. 감독님이 보시고선 '너 왜그래?'라고 하시더라고요."

깜짝 변신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 29라운드 전북전이었다. 경고 누적으로 경기엔 나서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팀의 0-4 대패를 지켜보고 있었던 심동운은 남몰래 전의를 불태웠다. "저렇게 무너질 리가 없는데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진짜 속상했고, 스스로도 많이 자극을 받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준비했어요."

포항이 받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포항 관계자는 "물론 농담이지만 '다같이 형산대교에서 뛰어내리자'는 말까지 하더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마냥 풀이 죽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코칭스태프와 따로 시간을 가지면서 분위기를 환기했고, 심동운은 한 가지 약속을 하고 강원전에 들어섰다. "내가 해결하겠다"는 약속. 이는 기적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1골 1도움, 단연 눈에 띈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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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따로 김기동 코치님과 식사를 했거든요. '티 안내시지만 감독님도 힘드신 것 같다. 잘해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제가 해결할게요'라고 해버렸어요. 말하고 나니까 걱정이 되긴 되더라고요. 그런데 경기 시작 전에 또 그랬어요. '제가 잘하겠다'고. 무조건 이겨야 되는 상황이었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 2017 심동운 : 29경기 출장 5골 2도움…그는 스스로 '조연'이 되기로 했다

심동운은 20일 스틸야드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되돌아봤을 때 그는 '조연'에 가까웠다. 29번 출석 도장을 찍은 성실한 조연 말이다. 그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욕심 많은 선수'다. 하지만 올시즌 욕심을 내려놨다. 부쩍 줄어든 슈팅 수가 그 반증. 시즌 전 세운 목표도 '(양)동현이 형 득점왕 만들기. 도움 10개'였다.

"원래 욕심이 많은 스타일인데 욕심을 버렸어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하잖아요. 동현이 형이 골을 많이 넣어줘야 쭉쭉 성적이 나는 팀 컬러를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 동현이 형이 많이 넣었을 때 좋았잖아요. 에이스가 득점할 수 있게 많이 신경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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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올 시즌 공격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풀백이 전진하면서 공격에 힘을 싣고 중앙 타깃형 스트라이커에게 확률 놓은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심동운은 부침을 겪었다. 프리롤을 주면 휘젓는 스타일인데, 틀이 주어지면서 팀플레이를 하려다 보니 제 기량을 뽐내지 못했다. 풀백과 겹치는 동선도 문제였다.

'조연'을 자처했지만 심동운도 조급해질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때 그를 잡아준 건 최순호 감독이었다. 눈에 보이는 기록은 전보다 떨어졌지만 심동운은 최 감독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강조, 또 강조했다.

* 심동운 in 포항 STAT : 2015시즌 28경기 출장 1골 3도움 / 2016시즌 10골 1도움 / 2017시즌 29경기 출장 5골 2도움(진행중)

"방법은 저도 알고 있어요.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축구 스타일을 알고, 또 그게 시즌 초반엔 잘 됐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런 건 있었어요. 원하는 개인 시즌 목표를 못 이룰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초조할 때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잘 잡아주셨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는 끝까지 감독님 믿고 가려고요."

◆ 7월 그 이후 : '3위에서→7위로' 추락을 보는 내부자의 시선

심동운 말처럼 포항, 시즌 초반엔 잘나갔다. 6월까진 3위를 지키면서 '돌풍'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7월 들어 순위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결국 스플릿 A와 B 경계선에 놓였다.

'내부자'의 진단은 한마디로 '흐름을 놓쳤다'는 것이다. 심동운은 부상과 악재가 겹치면서 전술적 완성도를 높여가는 데 제동이 걸렸고,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한 게 추락의 원인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김)광석이 형 부상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안좋은 일이 계속 겹쳤어요. 자꾸 다치고, (김)승대 마저 큰 징계 받고. 운도 안따른 것 같아요. 말 그대로 흐름을 놓친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 뛰다 보니까 이겨내는 힘이 부족했죠. 한 경기를 잘 못해도 다시 그 다음 경기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는데, 그렇질 못했어요. 한 명 한 명, 자신 있게 못한 게 크지 않았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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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운이 아쉬워 한 건 전술적 플랜B의 부재가 아니라 플랜A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포항을 상대하는 팀들은 '측면 봉쇄+전방 압박' 카드를 들고 나와 쏠쏠한 재미를 봤다. 심동운은 알고도 못 막을 정도로 숙지하지 못한 것을 진지하게 돌아봤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던 저희 스타일을 같았어요. 팀 컬러가 정해졌고, 그 스타일을 상대가 알고도 못막는 팀이 되자는 게 팀 목표였죠.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부상과 악재가 겹치면서 저희는 전술적 완성도를 올려가는 데 풀이 확 꺾였고, 상대는 우릴 알고 하면서 안좋게 맞아 떨어졌어요. 상대가 잘하면 수비 만하고, 상대 못한다고 공격하고, 그건 스틸러스 축구가 아니에요. 강철전사라면 우리만의 색깔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하든 완벽하게 부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안좋아서 단지 그게 잘 안된 거라 생각해요."

◆ 입대 전 마지막 바람 : 스플릿 A…"서울 이기면 확률은 70%"

순위가 썩 마음에 내키진 않지만 심동운에겐 올시즌이 각별하다. 축구하면서 가장 좋았을 때가 '포항과 계약했을 때'라는 자타공인 포항 바라기가 입대전 마지막 포항 유니폼을 입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스플릿 A로 가는 길, 운명이 걸린 3연전. 이젠 '욕심'도 내보내겠다는 심동운이다. 슈팅도 이제 아끼지 않겠다고 눈을 밝혔다.

"입대 전까지 팀에서 남은 경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 밖엔 없어요. 남은 경기 개인적으로도 욕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원전 끝나고 아버지부터 제철소소장님까지 '때리면 들어가는 데 왜 안때렸냐'고 한 소리씩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인데, 저도 욕심 이제 내야죠."

심동운은 A그룹 진입 가능성을 50대 50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건 오는 24일 열릴 서울전. 이날 이기면 설령 강원이 광주를 이긴다 하더라도 "확률이 70%는 된다고 본다"고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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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생인 심동운. 포항의 응원가인 '영일만 친구'를 벨소리로, 또 알람으로 쓰고 있다. 1979년 발매된 노래를 두고 "너무 좋지 않아요?"라면서 "매일 골을 넣는 기분으로 전화받고,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참으로 별난 포항맨. 심동운은 잃어버린 승점에 대한 아쉬움은 후로 미루려 한다. "시간은 되돌릴 순 없다"면서 내일을 이야기한 그다.

"서울전이 정말 중요해요. A그룹, 포기하면 안되죠. 포기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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