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레슬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속 금메달 기록을 세운 심권호가 2000년 시드니 대회 그레코로만형 54kg급 결승에서 쿠바의 로베르토 몬존에게 목감아돌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자유형 68kg급 유인탁은 조 예선 5번의 경기에서 3차례나 테크니컬 폴승을 거두는 등 가볍게 결승에 올라 미국의 앤드류 레인과 맞섰다. 유인탁은 어깨메어치기로 3점을 선취했으나 레인의 끈질긴 반격에 3-4로 역전당했고 다시 5-4로 뒤집었으나 경기 종료 37초를 남기고 5-5 동점을 허용했다. 유인탁은 김원기와 마찬가지로 경기 초반 얻은 큰 점수(3점)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자유형 52kg급의 김종규는 은메달을 추가했고 자유형 48kg급 손갑도와 57kg급 김의곤 그리고 62kg급 이정근, 그레코로만형 52kg급 방대두는 동메달을 보탰다. <3편에서 계속> 

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금맥을 발견한 레슬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 나선 김영남은 예선 4차전까지 전승 가도를 달렸으나 5차전에서 폴란드의 요제 트라츠와 연장 접전 끝에 함께 실격되면서 자력으로 결승 진출이 어려웠으나 트라츠가 김영남과 조 1위를 다투던 불가리아의 벨리츠코프를 판정으로 눌러 결승에 올랐다. 김영남은 결승에서 소련의 다울렛 투르하노프에게 먼저 1점을 내줬으나 목감아돌리기로 2점을 뽑아 역전승했다. 김영남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메달 일보 직전인 4위에 그친 아쉬움을 금메달로 날려 버렸다.

68kg급의 김성문은 결승에서 소련의 레본 둘팔라키안에게 0-3으로 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52kg급의 이재석과 62kg급의 안대현, 82kg급의 김상규는 각각 동메달을 획득했다. 

자유형 82kg급의 한명우는 6전 전승으로 조 예선을 통과한 뒤 결승에서 터키의 네스미 겐칼프와 맞서 눈썹 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붕대를 감고 경기를 치르는 투혼을 펼치며 4-0으로 이겨 레슬링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명우도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6위에 머문 아픔을 단숨에 씻었다. 한명우는 이때 32살로 레슬링 선수로는 많은 나이였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68kg급의 박장순은 결승에서 소련의 아르센 파제프에게 0-6으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57kg급의 노경선과 90kg급의 김태우는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스포츠가 세계 10강의 기틀을 마련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레슬링은 3개 대회 연속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제 몫을 톡톡히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68kg급 은메달리스트인 박장순은 체급을 올린 자유형 74kg급 결승에서 올림픽 2연속 우승을 노리던 서울 대회 74kg급 금메달리스트인 캐네스 먼데이(미국)를 대접전 끝에 1-0 판정으로 누르고 금메달의 한을 풀었다. 

그레코로만형 57kg급의 안한봉은 1990년,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리파트 일디츠(독일)를 불꽃 튀는 접전 끝에 판정으로 꺾고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안한봉은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일디츠에게 초반 잇따라 점수를 내주며 경기 종료 30초 전까지 3-5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사력을 다한 허리 태클과 옆굴리기로 내리 3점을 따 6-5의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 냈다.

레슬링에서는 이밖에 자유형 48kg급의 김종신이 은메달, 그레코로만형 52kg급의 민경갑이 동메달을 획득해 한국 선수단의 메달 레이스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 대회에서는 북한도 선전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차지했다. 남북한을 더한 성적은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미국(금 3 은 3 동 2)을 제치고 레슬링 강국 독립국가연합(금 6 은 5 동 5)의 뒤를 이어 이 종목 2위에 해당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그레코로만형 48kg급 심권호였다. 2년 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국 선수단의 ‘1호 금메달’을 따 메달 레이스에 신바람을 불어넣었던 심권호는 이 대회에서도 승승장구한 끝에 결승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알렉산더 파를로프(불가리아)를 4-0으로 꺾고 1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권호의 금메달은 한국이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금, 은, 동메달을 통틀어 동·하계 올림픽에서 딴 100번째 메달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심권호 외에 자유형 62kg급 장재성과 74kg급 박장순, 82kg급의 양현모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심권호는 4년 뒤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또 다른 기록을 세운다. 애틀랜타 대회보다 한 체급 올린 54kg급으로 출전한 심권호는 결승전에서 쿠바의 라자로 리바스를 일방적으로 공략한 끝에 8-0 완승을 거두며 한국 레슬링 선수로는 올림픽에서 첫 2연속 우승이자 두 체급 금메달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대회에서는 자유형 76kg급의 문의재와 그레코로만형 58kg급의 김인섭이 은메달, 자유형 63kg급의 장재성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60kg급의 정지현은 결승에서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로베르토 몬존(쿠바)과 연장전까지 가는 팽팽한 승부를 펼친 끝에 허리 태클에 이은 옆굴리기로 순식간에 3점을 따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눈두덩이 퉁퉁 부어 오른 정지원의 투혼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보다 한 체급 올린 84kg급의 문의재는 또다시 금메달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그레코로만형 55kg급의 박은철이 유일한 메달리스트(동)가 되면서 숨을 고른 한국 레슬링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김현우가 그레코로만형 66kg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다시 금맥을 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김현우가 체급을 올려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지만 금맥을 잇지는 못했다. 

한국 레슬링은 남자부의 경기력을 유지 또는 향상하고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정식 세부 종목이 된 여자부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웃 일본이 여자부에서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도 여자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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