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취재 조영준 기자, 영상 이강유 기자] "한국 남자 배구는 여전히 침체기입니다. 프로화가 되고 난 뒤 팀과 선수들이 국가 대표를 등한시하지 않았나 싶군요. 국가 대표 팀이 잘 돼야 한국 배구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가 돌아왔다. 선수 시절, 프로 배구 최고 리그인 이탈리아 리그를 호령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의 전성기를 이끈 컴퓨터 세터 김호철(62)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14~2015 시즌 현대캐피탈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코트를 떠났다. 배구에만 집중하고 살아온 그에게 개인 생활은 없었다.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보냈던 김 감독은 현장에 복귀했다.

▲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호철 감독 ⓒ 스포티비뉴스

그것도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남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을 맡았다. 한국 여자 배구는 김연경(29)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치며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여자 배구 대표 팀이 순항하고 있을 때 남자 배구는 망망대해를 표류했다. 남자 배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감독은 마지막 배구 인생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대표 팀 지휘봉을 잡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김 감독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한국 남자 배구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높다.

남자 배구 대표 팀은 충북 전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음 달 2일부터 진행되는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 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손발을 맞추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국내 팬들이 앞에서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김 감독은 "주요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빠졌기에 현재 대표 팀의 전력은 떨어진다. 월드 리그에서는 국내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 경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김호철 감독(오른쪽)과 임도헌, 이영택 코치 ⓒ 스포티비뉴스

남자 배구 대표 팀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지휘봉 잡아

어느새 김 감독은 환갑을 넘었지만 여전히 '열혈 지도자'였다. 선수들이 훈련할 때 코트에 직접 들어가 뛰어다니며 세세하게 지도하는 열정은 예전과 똑같다. 신영석(31, 현대캐피탈)을 비롯한 몇몇 베테랑 선수들은 김 감독 밑에서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 다시 코트에 돌아온 김 감독과 과거에 이뤘던 한국 남자 배구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신영석은 "과거 드림식스(현 우리카드)가 힘든 시절 감독님과 함께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표 팀에서 다시 만나 반갑고 앞으로 감독님과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에게 처음 지도를 받은 이시우(23, 현대캐피탈) 같은 젊은 선수도 있다. 이시우는 "김 감독님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함께해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부족한 점도 보완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과거 김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들을 장악했다. 그는 강한 제스처와 직설적인 어투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은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다.(웃음)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까지는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잘 참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남자 배구 대표 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지도자로 20년 넘게 현장을 누빈 김 감독은 "배구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가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고 무겁다"며 "처음에는 그런 것(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배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마무리를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6년 대표 팀을 이끌며 한국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힘을 보탰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 무너져가는 한국 남자 배구를 살리는 것이 그의 의지다.

김 감독은 "한국 남자 배구는 침체기다. 프로화가 되고 난 뒤 국가 대표를 등한시하지 않았나 싶다"며 "국가 대표 팀이 잘 돼야 국내 리그도 활성화 된다. 모두가 신경 써주면 좋을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류윤식(오른쪽)을 지도하고 있는 김호철 감독 ⓒ 스포티비뉴스

마지막 배구 인생, 대표 팀에 묻고 싶다

현재 대표 팀의 전력에 대해 김 감독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우선 김 감독이 원했던 대학 선수들을 진천에 데려오지 못했다. 이유는 학사 점수 때문이다. 대표 팀으로 선발되면 학교 수업에 지장을 줘 학사 점수를 받기 어렵다. 대신 각 프로 구단에서 젊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김 감독은 "전광인과 서재덕(이상 한국전력) 등 여러 선수가 대표 팀에서 해줘야하는데 몸이 좋지 않다. 전광인과 서재덕은 부상으로 이번 대표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성민(현대캐피탈)은 무릎 수술을 했다. 나머지 선수들로 대표 팀을 꾸렸는데 전력은 좀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월드리그 목표는 2그룹 잔류이지만 현실을 보면 그마저 어려울 수 있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김 감독은 "그러나 국내 팬들이 실망하지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주전 선수 구상에 대해 김 감독은 "주전은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다. 상대 팀과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선수들을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주전 레프트로 맹활약한 전광인과 지난해 월드리그에서 한국의 주포 소임을 해낸 서재덕은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합류시킬 계획이다.

김 감독은 대표 팀에 이민규(25, OK저축은행) 노재욱(25, 현대캐피탈) 황택의(21, KB손해보험) 3명의 세터를 뽑았다. 이번 월드리그에서 세 명의 세터를 적절하게 테스트한 뒤 앞으로 대표 팀을 이끌 주전 세터를 선정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대표 팀의 밝은 미래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가능하다면 저는 대표 팀에 제 마지막 배구 인생을 묻을까 생각합니다. 대표 팀을 위한 시스템과 선수들이 의욕을 가지고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도쿄 올림픽에 임할 수 있는 전체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저도 여기에 투신할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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