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2년 한강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경기. 연희전문의 상대 팀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먼저 아래 댓글을 소개한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입니다. 저희 땐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쾌거를 후배님들이 이루어 주셨군요. 아무리 귀화 선수가 많다 해도 이 정도 경기력을 펼칠 줄 몰랐습니다. 러시아와 평가전 때도 그랬지만 정말, 영원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카자흐스탄에 무려 5골을 넣고 이기다니, 정말 기쁘네요. NHL 스탠리 컵이나 올림픽 파이널보다 오늘 경기를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우리 후배님들 수고하셨고, 백지선 감독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 아이스하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이 댓글은 2017년 4월 현재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현주소를 정확히 짚고 있다.

한국은 24일 오전(이하 한국 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남자선수권대회 디비전 Ⅰ 그룹 A(2부 리그) 2차전에서 카자흐스탄에 5-2(1-1 0-1 4-0) 역전승을 거뒀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1부 리그)에서 강등된 이번 대회 최강 팀이다.

한국은 1-2로 뒤져 패색이 짙던 3피리어드에 4골을 몰아치는 무서운 뒷심으로 카자흐스탄에 12전 전패 끝에 첫 승리를 일궈 냈다. 전날 폴란드를 4-2로 꺾은 한국은 1부 리그 승격의 청신호를 밝혔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1964년 1월 이제는 어디에 있었는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국내 첫 실내 아이스 링크가 동대문 밖 창신동에 문을 열었다. 바람이 쌩쌩 부는 춘천 공지천에서 컴펄서리 프로그램을 하다가 맞바람을 맞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물론 창경궁과 한강 등지에서 경기를 하던 아이스하키 선수들 그리고 스케이팅을 즐기는 동호인들까지 동대문 링크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돌아갔다. 연고전 아이스하키 종목도 이곳에서 열렸다.  

원로 체육인들은 1960~70년대 김연아의 선배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훈련해 기술이 크게 늘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동대문 링크 이곳저곳에 파인 얼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정빙차(整氷車)도 없을 때다. 

국내에 달랑 하나 밖에 없던 실내 링크는 1979년 석유 파동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해 전기 요금이 3차례나 오르면서 인조 얼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억3,000만 원에 이르고 1980년 9,500여만 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그래서 빙상경기 관계자들은 일반 영업용 전력 요금이 아닌 산업용 전력 요금을 적용해 달라고 문교부와 동력자원부 등에 호소하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도 휴업과 개장을 반복할 정도로 국내 유일의 실내 링크 운영은 힘들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동대문 아이스 링크는 이미 사라질 운명이었다. 1976년 3월 서울시 도시 정비 계획에 따르면 도심지 반경 5km 이내에 있는 암모니아 가스 탱크 제빙 시설을 철거하기로 돼 있었다.

▲ 1932년 6명의 선수로 출발한 연희전문(오늘날의 연세대) 빙구(氷球 아이스하키) 팀. ⓒ대한체육회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환경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다음 해인 1946년 육상과 축구, 야구, 배구 등 주요 종목들이 각각 제1회로 활발히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민간인의 38선 통과가 금지되기 두 달 전인 1946년 3월 25일 광복 후 첫 경평축구대항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조선체육회는 1946년 10월 16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운동장에서 ‘조선올림픽대회’를 열었다. 아직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2년 뒤인 1948년 런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조선올림픽대회라는 대회 명칭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가 현재의 제27회 전국체육대회다. 대회에는 16개 종목에 5천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했다. 

동계대회는 다음 해인 1947년 1월 21일부터 열렸는데 스피드스케이팅은 한강에서, 아이스하키는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각각 치러졌다. 이에 앞서 1946년에는 같은 곳에서 경평아이스하키대회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창경원은 신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제국주의 일본이 창경궁을 격하해 동물원 등 위락 시설을 설치해 놓은 곳이다. 창경궁 안에는 춘당지(春塘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앞에 나온 창경원 특설 링크가 설치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이 스케이팅을 즐기기도 했다.  

제4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 빙상대회는 1959년 1월 24일부터 이틀 동안 한강 특설 링크에서 열렸고 아이스하키는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그리고 동계 스키대회는 2월 6일부터 이틀 동안 대관령에서 치러졌다.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는 한강과 창경궁 또는 서울운동장 특설 링크를 오가면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했는데, 지방에서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리면 어떤 곳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치렀을까.    

1967년 제47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원주 특설 링크와 대관령 스키장에서 분산 개최됐다. 원주시 중심부에 있는 봉산천에 정규 링크(스피드스케이팅)와 아이스하키장, 피겨스케이트장이 마련돼 동계 대회 사상 처음으로 스키를 제외한 3개 종목의 경기를 한자리에서 치렀다.  

선배들이 누리지 못한 환경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아이스하키는 국내에서 여전히 비 인기 종목이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으로 올려야 같은 빙상경기인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정도의 인기를 누릴 텐데. 

24일 현재 한국은 IHHF 랭킹 22위다. 일본은 23위로 디비전 Ⅰ그룹 B(3부 리그)에 속해 있다. 한국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꺾은 카자흐스탄은 17위, 폴란드는 20위다. 

이런 모든 상황이 댓글을 쓴 이가 말한 대로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종목 개막은 이제 3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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