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 만의 복수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한 FC안양.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FC안양은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7 KEB 하나은행 FA컵 4라운드 FC서울과 경기에서 0-2로 패했다. 

경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FC서울은 2003 시즌까지 ‘안양 LG 치타스’였다. 2004년 구단이 서울로 연고 이전을 추진했다. 그렇게 'FC서울'이 탄생했다.

그리고 13년 만의 재회였다. 하루아침에 응원하는 팀을 잃었던 안양 팬들은 시민구단인 ‘FC안양’과 함께 서울 원정에 나섰다. ‘옛 애인’을 만나는 마음가짐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포터 '수호신'과 비슷한 수의 안양 서포터 '레드'가 경기장을 찾아 응원전을 펼쳤다. 사실상 서포터가 모두 모였다는 후문이다.

▷ K리그 연고 이전의 역사

'FC서울'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안양 LG 치타스'였다. 지지대 고개를 두고 수원 삼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슈퍼매치'도 탄생했다. 2004년 연고를 옮겨 FC서울이 탄생했다.

안양 LG는 떠났지만 팬들은 남았다. 유니폼이 보라색인 FC안양이지만 서포터의 이름은 빨간색을 의미하는 '레드'다. 안양LG 시절부터 이어온 서포터 명칭을 그대로 이어왔다. ‘홍득발자(紅得發紫).’ 안양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내건 걸개에 적힌 말이다. 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라는 뜻이다. 빨간 안양 LG 유니폼으로 시작해 보라색 FC안양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안양 팬을 잘 표현한다.

연고 이전 팀은 또 있다. 부천FC1995는 2006년 부천 SK가 제주로 연고 이전을 한 뒤, 팬들이 힘을 모아 창단한 구단이다.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부천에 자리를 잡았다. 안양도 마찬가지다.

부천은 지난해 10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2016 KEB 하나은행 FA컵 4강전 서울과 경기를 치렀다. 당시 부천의 서포터 헤르메스는 경기 시작 전과 후반전 킥오프 전 "연고 이전 반대"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부천은 아직 제주 유나이티드를 공식전에서 만난 적이 없다. 지난해 굳이 서울을 만나 ‘연고 이전 반대’를 외친 것은 일종의 공감대다. 지역과 밀착을 무시하고 떠나버린 구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축구 종가 영국에서도 연고 이전이 문제가 됐다. 영국 런던 윔블던에 연고를 뒀던 윔블던 FC가 밀턴케인스로 연고지를 옮겨 MK 돈스로 팀 이름을 바꿨다. 윔블던의 서포터들은 윔블던에 다시 AFC 윔블던을 창단했다. AFC 윔블던이 이번 시즌 리그 1에 합류하면서 두 팀은 치열한 라이벌전을 펼치고 있다.

▲ "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다" 안양 서포터. ⓒ곽혜미 기자

▷ ‘규정 위반’ 홍염, 대체 무엇을 위한 퍼포먼스였나.

경기 전부터 응원전을 펼치던 '레드'는 킥오프 전 그들의 이름처럼 붉은 '홍염 폭죽'을 터뜨렸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안양 쪽 관중석 전체가 붉은 불빛과 연기를 쏟아냈다. 연기가 경기장 절반을 뒤덮을 정도였다.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었다. 안양 LG 시절부터 안양 축구를 지킨 서포터 ‘레드’의 ‘한 서린’ 퍼포먼스였다. 부정적 반응도 그리고 이해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홍염은 안전 문제로 경기장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다. 그래서 레드의 조직적인 일탈에 비난 여론이 있었다. 해묵은 불만과 한이 쌓였다곤 해도 엄연히 규정을 깬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발적 행동도 아닌 계획적인 일이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플랫폼에서 안양 팬 한 명을 만났다. 안양 LG 치타스를 아꼈다는 그는 "오랜 세월 쌓여온 게 있었다. 명분이 너무 완벽했다"며 홍염 퍼포먼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래 안양이 홍염으로 유명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처벌 받을 사항도 아니고 일반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타오른 홍염에서 전 '안양 LG 시절'의 향수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레드’의 거친 퍼포먼스를 이해한다는 시선도 있었다. 안양 팬들이 서울을 대적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13년이었다. '레드'에겐 해묵은 한과 연고 이전의 문제를 동시에 표현할 수단이 필요했다. 이번은 특별했다. 문제의 연고 이전이 있었던 2004년 이후 최초의 만남이었다.

안양 팬들은 ‘폭력’을 즐기는 훌리건은 아니었다. 거친 퍼포먼스 뒤엔 물리적 충돌 없이 경기장을 안전하게 떠났다. 경기장에 폭력을 끌고 오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홍염을 반입하는 규정 위반은 했지만 우려했던 폭력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13년을 지나며 적대감은 옅어졌다. 그리고 안양 팬들에겐 이제 새 애인 ‘FC안양’이 생겼다.

▷ 앞으로는 스토리가 되겠지만… 잊지 않아야 할 어두운 역사

이번 맞대결로 또 하나의 자연스러운 더비 경기가 탄생했다. 경기 뒤 황선홍 감독은 “홍염이 타오르는 것에 깜짝 놀랐다”면서도 “축구는 역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좋은 이미지로 승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은주 FC 안양 단장도 “(홍염은) 서포터즈의 열정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팀을 사랑한다는 증거다. 오래된 히스토리가 있다. K리그에 더 많은 스토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서울과 제주의 연고 이전은 10년도 더 지난 옛 이야기가 됐다. 서울과 제주는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과 3위에 올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선진적인 구단 운영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현재 안양과 부천은 시민 구단을 창단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외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안양과 서울의 더비 경기는 이제 앞으로 K리그의 재미를 높이는 경기가 될 것이다. 아직 재회하지 못한 부천과 제주의 경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양 팬들의 퍼포먼스가 왜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스토리'가 추가됐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축구는 지역 연고제의 정착을 바탕으로 발전한 스포츠다. '노스웨스트 더비'가 맨체스터와 리버풀 도시 간 자존심 싸움이 되는 이유도 지역과의 밀착 덕분이다. 과거 K리그 팬들은 연대해 구단의 연고 이전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잘못을 잊는다면 K리그의 발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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