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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축소 예정 내년 자카르타 하계 AG, 반세기 전에도 어려웠던 대회 개최

기사승인 2017.04.20 12:12
▲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 ⓒEPA=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일 자 자카르타발 연합뉴스에 따르면 내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제18회 여름철 아시아경기대회는 규모가 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언론들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난 18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아시안게임 개최 종목을 42개에서 36개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OCA는 지난달 6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2018년 아시안게임 6차 조정위원회에서 42개 종목에 484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기를 치르기로 확정했으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여 왔다.

2012년 11월 하노이(베트남)는 경쟁 도시인 수라바야(인도네시아)를 따돌리고 2019년 대회 개최지로 확정됐다. 그런데 2014년 4월 베트남 정부는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했다. OCA는 대체 개최지를 찾다가 2014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대회를 열기로 하고 개최 연도를 2018년으로 바꿨다. OCA는 겨울철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을 피하기 위해 개최 연도를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변경했는데 2019년에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가 있어 개최 연도를 환원했다. 

떠맡다시피 한 대회인데다 개최 비용 등에 압박을 받다 보니 대회 규모 축소가 이뤄진 것 같다. 내년 아시안 게임에서 열리지 않게 된 것으로 알려진 종목 가운데 핸드볼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핸드볼 외에 셰팍타크로, 럭비, 카바디, 스쿼시 등도 있는데 한국으로서는 이들 종목보다는 핸드볼의 메달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것은 1962년 제4회 자카르타 대회 이후 두 번째인데 반세기 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1962년 대회는 그 무렵 제3 세계의 리더로 자처하고 있던 인도네시아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스라엘과 자유중국(대만)에 ID 카드 발급을 거부하는 등 소란 속에 8월 24일 개막해 9월 24일까지 16개국 1,460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졌다. 자카르타는 1958년 5월 카라치(파키스탄)를 22-20으로 따돌리고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개최국이 특정 나라의 출전을 가로막자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역도연맹은 각각 이 대회의 해당 종목에 출전하는 나라는 제명 또는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아시아경기연맹(AGF, OCA 전신)에서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자 한국 선수단은 신중한 검토 끝에 육상경기와 역도에는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와 1958년 제3회 도쿄 대회에서 연속으로 종합 3위에 올랐던 한국이 종합 6위(금 4 은 9 동 10)로 밀려난 까닭이기도 하다. 이 대회 종합 1위는 금메달 73개(은 56 동 23)를 쓸어 담은 일본이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일본 외 나라들이 얻은 금메달은 40개에 그쳤다. 중국이 아직 국제 스포츠 무대에 얼굴을 내밀지 않던 시절 일본은 아시아에서 절대 강자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일본에 이어 개최국 인도네시아(금 11 은 12 동 28)가 종합 2위를 차지했고 인도(금 10 은 13 동 10개)와 파키스탄(금 8 은 11 동 9), 필리핀(금 7 은 6 동 24)이 뒤를 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시안게임에서 스포츠를 정치에 물들이는 조치를 하자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인도네시아올림픽위원회에 무기한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는 IOC가 특정 회원국에 징계를 내린 첫 번째 사례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외무 장관은 "제국주의자들이 이끄는 기존 대회에 대항해 아시아, 아프리카 신생국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1963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IOC 탈퇴와 함께 '가네포'(The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 신생국경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11월 자카르타에서 소련과 중국, 북한, 쿠바, 동독, 세네갈 등 51개국 2,00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한 가운데 제1회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 대회에 나선 소련의 자세가 애매모호했다. 소련은 아시아, 아프리카 제3 세계 나라들과 연대를 과시하기 위해 선수들을 파견했으나 IOC 내에서 자신들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는 모두 뺐다. 

제2회 가네포 대회는 196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취소됐다. 제2회 대회는 아시아 지역 외 나라로는 아프리카의 기니만 출전한 가운데 1966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그래서 '아시아 가네포 대회'로 불린다. 두 번째 '아시아 가네포 대회'는 1970년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대회는 이후 영원히 개최되지 않았다. 정치와 스포츠를 철저히 분리하는 IOC에 맞서 정치와 스포츠를 엮으려 했던 가네포는 물거품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열린 대회에서 한국의 금메달은 복싱과 사격에서 나왔다. 한국은 복싱 10체급 가운데 8체급에 출전해 라이트 웰터급 김득봉과 플라이급 정신조(1964년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그리고 미들급 김덕팔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격에서는 남상완이 자유소총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강욱은 자유 권총 은메달, 배병기는 소구경소총 3자세 동메달을 각각 차지했는데 사격이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55년 대한사격협회(1965년 대한사격연맹으로 개칭)가 창설된 이후 처음이었다. 

5명의 선수가 출전한 레슬링에서는 자유형 플라이급 장창선(1964년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 은메달, 자유형 밴텀급 최영길과 그레코로만형 웰터급 오재영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김원기가 62kg급에서 우승하는 등 그레코로만형은 1980년대 이후 주요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한국의 메달 전략 종목으로 한몫하지만 이때만 해도 국내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 선수단은 자카르타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레코로만형은 출전하지 않기로 했지만 현지에서 방침을 바꿔 오재영을 내보내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이 대회에서 눈길을 끄는 종목은 배구다. 당시만 해도 배구는 9인제(극동식)와 6인제(국제식)가 함께 치러지고 있었다. 남녀 모두 6인제 경기는 한국으로서는 첫 국제 대회 출전이었는데 여자가 6인제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뒷날 세계 무대에서 선전을 기약했다. 

축구는 이스라엘과 자유중국(대만)이 불참하면서 출전국이 8개국으로 줄었지만 정상적으로 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한국은 결승전에서 인도에 1-2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했다. 이때까지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농구는 당시 아시아 최강 필리핀과 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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