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민규 칼럼니스트]야구는 생물과도 같다. 야구는 탄생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최초의 변화구인 커브를 시작으로 많은 변화구가 만들어졌고 1921년에
시작된 라이브 볼 시대는 야구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전환점이었다. 1969년에는 투고타저를 완화하기 위해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지기도 했으며 세이버메트릭스 보급 이후 머니 볼 시대가 시작되면서 과거에 홀대 받았던 기록들이 재평가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본격적으로 등장한 스탯 캐스트는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놓았다. 타구 속도, 타구 각도와 같은 새로운 정보들은 타격에 관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스탯 캐스트로 밝혀진 것은 땅볼보다 장타 확률이 높은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의 효율성이 좋다는 것이다. 이는 곧 타격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땅볼보다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볼은 홈런이 될 수 없다.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이자 레벨 스윙 이론을 주장했던 찰리 로와는 대척점에 있는 테드 윌리엄스는 일찍이 어퍼컷 스윙을 예찬했다. 공을 항상 전력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자서전인 ‘타격의 이론’에서 엉덩이를 끌어내야 하는 어퍼컷 스윙은 파워와 스피드를 올릴 수 있으며 배트를 잡고 있는 위쪽 손이 가능한 가장 강력한 위치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강한 힘을 실어 공을 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에 윌리엄스는 이미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는 플라이볼 열풍이 불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장타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탯 캐스트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2015년 10.5도였던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타구 각도는 지난해 11.5도로 더 커졌다. 그 결과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홈런은 모두 5,610개로 금지 약물 시대였던 2000년의 5,693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타구 각도는 지난해보다 1.5도가 더 커진 13도. 그에 따라 지금까지 치러진 405경기에서 나온 홈런은 464개로 지난해 기록(406경기 411홈런)을 크게 앞서고 있다.
지난해 홈런 수가 2015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선수들은 대부분 평균 타구 각도가 커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야스마니 토마스. 2015년 홈런 9개에 불과했던 토마스는 그러나 지난해 31홈런을 기록하며 반전을 만들어 냈다. 토마스의 홈런 수가 이렇게 늘어난 데에는 평균 타구 각도가 5.8도(7.4→13.2) 커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밖에도 마크 트럼보, 프레디 프리먼, 카를로스 산타나 그리고 제드 졸코와 같이 홈런 숫자가 대폭 증가한 이들 또한 타구 각도가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일(이하 한국 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다저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인 LA 다저스는 10-2 대승을 거뒀다. 다저스가 승리하는 데 가장 큰 몫을 한 이는 야시엘 푸이그였다. 7번 타자로 출장한 푸이그는 2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중심 타선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 .294의 타율과 .985의 OPS 그리고 4홈런 11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푸이그는 메이저리그에 불고 있는 플라이볼 열풍의 후발 주자로서 부진했던 2015년, 2016년과는 다른 기대감을 심어 주고 있다.
올 시즌 푸이그의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에 앞서 지난 2년간 왜 그가 부진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2년간 푸이그는 많이 다쳤다. 햄스트링과 어깨 등 여러 부위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DL)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경기 감각을 쉽게 되찾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부진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약한 타구의 비율이 20%를 넘어서고(2015년 20.7%/2016년 20.5%) 타구의 발사 각도가 중구난방으로 퍼지면서
질 좋은 타구를 생산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푸이그의 강한 타구의 비율은 31.2%로 데뷔 이후 가장 낮았고 인필드 플라이볼 비율은 22.8%로
가장 높았다.
아무리 빠른 속도의 타구라도 그 각도가 낮다면 홈런이 될 수 없다. 지난해 푸이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시속 91.6마일이었다. 이는 최소 200개의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 낸 선수 가운데 공동 39위에 해당했는데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타구의 평균 각도가 9.9도로 장타를 많이 생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체 인플레이의 발사 각도가 집중되지 못하면서 타구 대부분이 얕은 플라이볼에 그치고 말았다.
푸이그의 팀 동료이자 다저스 3루수인 저스틴 터너는 메이저리그의 플라이볼 혁명을 이끌고 있다. 터너와 그를 더 훌륭한 타자로 성장하게끔 도움을 준 더그 래타 코치의 일화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유명해진 바 있다. 래타 코치가 터너와 같이 훈련하면서 그에게 해 준 가장 중요한 조언은 ‘어퍼컷 스윙으로 땅볼보다는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를 만들어 내라’였다. 그리고 터너는 래타 코치의 조언을 받아 타구의 각도를 키워 나갔고 지난해 30홈런에 가까운 27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리그 정상급 3루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난 겨울, 푸이그는 그런 터너, 다저스 터너 워드 타격 코치와 함께 자신의 스윙을 개선하고
공을 공중으로 좀 더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푸이그가 겨울 동안 집중적으로 노력한 점은 스윙 궤적을 가장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는 각도에 맞추는 것이었다. 푸이그의 타격 준비 자세를 살펴보면 데뷔 첫해였던 2013년과는 달리 배트가 상당히 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퍼컷 스윙을 위한 준비 자세로 볼 수 있다.
겨울 동안의 훈련 덕분이었을까. 푸이그의 올 시즌 평균 타구 각도는 10.2도로 소폭 커졌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타구의 발사 각도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그림을 살펴보면 지난해와 올해의 타구 발사 각도에 대한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공을 퍼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스윙을 찾게 되자 푸이그는 타석에서 인내력마저 좋아졌다. 10개의 볼넷을 얻어 낸 푸이그의 볼넷 비율은 15.9%로 프리먼(16.1%)에 이어 내셔널리그 9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지난 4년과 비교해 선구안이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은 분명 괄목할 만하다.
올 시즌 첫 홈런을 터뜨렸던 지난 6일, LA 타임스 앤디 맥컬러프에 따르면 푸이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고 한다.
‘저는 공을 공중에 띄우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주머니에 돈이 남아나지를 않겠죠. 8번 타순이 익숙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게 주어진 자리입니다. 앞으로 라인업에 계속 올라갈
수 있도록 신께 기도할 겁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동안 푸이그가 보였던 곳과는 다른, 성숙한 느낌이 드는 인터뷰였다. 어쩌면 푸이그는 그만큼 절박했는지도 모른다. 푸이그는 지금과 같은 기세를 시즌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쿠바에서 온 젊은 야수는 메이저리그라는 험난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참조 : baseball-reference, fangraph, baseball savant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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