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가 17일 1대 1 트레이드를 했다. 멀티 내야수 신성현이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고 포수 최재훈은 한화맨이 됐다.

트레이드의 성패는 오랜 시간이 지나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다만 서로가 필요한 내용을 채웠다는 점에서 일단은 두 팀 모두 성공적인 트레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도 두 선수 가운데 조금 더 눈길이 가는 건 신성현이다. 그는 한화에 몇 안되는 20대 야수 요원이었다. 주 포지션인 3루수는 물론 2루와 유격수, 1루수까지 책임질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특이한 이력도 관심의 대상이다. 교토 국제고등학교로 야구 유학을 떠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다 히로시마에서 방출된 뒤 갈 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마침 생긴 한국 야구 사상 첫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며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신성현은 원더스의 중심이었다. 부단한 노력으로 여러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거포형 내야수로 성장했다. 그가 드래프트를 거쳐 프로 입문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던 이유다.

그러나 신성현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또 한번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신은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 고양 원더스 시절 스승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가게 되며 그에게 또 한번 기회가 왔다. 이후 지금까지 성장해 왔던 것이다.

앞으로 신성현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속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원더스 시절 훈련을 마치고 찍은 사진 한 장 속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별 수비 훈련을 마친 뒤 신성현이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통 흙투성이다. 깨끗하고 빛나는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다만 한 군데만은 빛나고 있다. 바로 그의 눈빛이다. 신성현은 웃고 있었다. 숫자로 세기 어려울 정도의 펑고를 받느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야 했지만 웃음까지 잃지는 않았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성현이 이후에도 찾아 온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힘은 이때 만들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원더스 투수 코치였던 이상훈 LG 피칭아카데미 원장은 원더스 선수들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원더스에서 마저 실패하면 영원한 루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누구나 인생에 고비는 오잖아. 아무리 잘나갔던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걸 이겨 내느냐 지느냐의 차이지. 여기서 이렇게 하고도 야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올 거야. 하지만 그 아이들의 가슴속엔 바위가, 그것도 아주 단단한 바위가 생길 걸. 큰 파도도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 그게 이 시간을 견뎌 낸 훈장 아닐까. 그렇게 생긴 바위는 나중에 우리 선수들이 어떤 삶을 살더라도 흔들리지 않게 해 줄 거야. 사업을 하건, 지도자가 되건, 겁내거나 두려워서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되지는 않도록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이 시간을 이겨 낸 선수라면 반드시.”

신성현도 그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에게도 가슴에 단단한 바위 하나쯤은 생겼을 것이다. 남은 시간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신성현이라면'하고 기대를 걸어 보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미래는 불투명했으며 눈 뜨면 치고 달리는 것만 해야 했던 시절. 그럼에도 신성현은 웃고 있었다. 그 때의 웃음을 잊지 않는다면 신성현은 언젠가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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